회고/일상 회고

나의 첫 취업준비 기록

susong 2023. 9. 1. 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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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첫 번째 취직의 결과는 25 지원, 12 서류 합격, 9 면접 참여, 9 합격으로 마무리되었다.

 

나의 첫 취준을 회고하며

내가 내 첫 이력서를 작성한 지 8주가 지났다. 내 첫 이력서는 프로그래머스에서 작성한 이력서인데, 지금 다시 한번 살펴보니 얼기설기 불필요한 말들이 잔뜩 들어가 있는 불필요한 이력서인 것이 이제는 보인다.(이런 이력서를 봐주고 조언해 주신 멘토님 한 분 한 분에게 정말 감사드린다) 폭풍 같았던 8주 간 나는 25곳의 회사에 나를 뽐냈고, 12곳에서 나를 만나보고 싶다고 이야기했으며, 면접 일정상 9곳의 면접을 진행했다. 또, 최종적으로는 9곳의 최종 오퍼를 받아 회사를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 오늘 글을 통해 짧았지만, 폭풍 같았던 나의 취준 이야기를 풀어보려고 한다.

 

한파에 내동겨쳐지다.

올해 취직은 유독 추웠다. 구직 시장에 채용 공고가 작년에 비해 너무 없어서 기사를 살펴보면 암울한 기사들만 가득하고, '아 지금이 겨울인가 겨울에 잘못 걸렸다 내 인생!' 하는 생각만 가득 들게 하는 한 해였다. 특히, 올해 신입 채용 시장은 정말 추웠던 것 같다. 모두 경력직만 원하고 신규는 원하지 않는 세상. 연봉 1억 보장→3500만 원… ‘개발자 우대’ 옛말 된 까닭 기사 제목만 봐도 암울한 채용시장을 알 수 있는 것 같다. 저 기사에 나오는 부트캠프 출신 A가 나인 것 같고 힘이 날만한 기적적인 일들은 거의 없었다.

 

'아 세상이여 왜 이때 내가 42 서울 멤버를 달게 하셨습니까!' 2년 아니 1년만 빠르게 멤버를 달았어도 훨씬 좋은 조건에서 구직을 할 수 있었을 텐데! 왜 내가 딱 멤버를 달고 개발자로 세상에 나서니 세상이 이렇게 추운 것인지 정말 세상이 원망스러웠다. 분명 내가 원하는 직군에서 작년에 사람인, 원티드를 켜면 넘쳐나던 공고는 모두 자취를 감추고 조건 몇 개만 달면 한 자릿수로 떨어지는 공고의 수는 스스로를 심적으로 위축되게 했다. '진짜 딱 1년만 빨랐어도.. 아니 내가 군대를 안 갔다면 아니 내가 장교를 안 갔다면?' 하는 부정적인 감정에 스스로를 가두었던 순간들도 분명히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절망하기에는 내 20대가 아깝지 않은가. 나는 불만은 구석에 두고 빠르게 내 살 길을 찾기 시작했다. 이력서를 쓰기 시작했고, 또 내 장점이 무엇인지 확인하기 시작했다. 내 지나온 인생을 정리하고 내가 남들보다 뭐가 돋보일까 혹은 내가 무엇을 잘하는지 하나하나씩 적어가기 시작했다. 분명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을 텐데, 아무리 힘들어도 어떻게든 해낼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 하나로만 준비를 시작했다.

나는 무엇이 장점인가?

'지피지기면 백전불퇴라' 내가 어떤 일을 성공하기 위해서는 '나'라는 인물을 객관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 과연 나는 어떤 장점이 있을까? 또, 내 장점 중에 개발자로서 매력적인 것들은 무엇이 있을까? 하는 고민은 일주일 동안 진행했다. 물론, 이 과정은 혼자 진행하지 않았다. 42 서울에서 이제는 멘토링을 진행하지 않으시지만, 우리 교육생들에게 관심이 많은 여러 멘토분들의 도움을 받아서 진행할 수 있었다. (이 글을 빌어 한날 멘토님, 배권한 멘토님, 루비 멘토님에게 큰 감사를 드린다)

 

멘토링과 별개로도 신입 개발자를 뽑을 때 어떤 점들을 중점적으로 보는지 선배 지인 개발자들의 이야기를 들었고, 또 그 이야기를 바탕으로 내 캐릭터 중 어떤 것들을 깊이 있게 서술할지 정했다. 여러 고민의 결과, 나는 크게 5가지를 이용하여 내 장점을 서술하기로 마음먹었고 그 특징들은 다음과 같다.

 

1. 한양대 출신이며, 그렇기 때문에 어느 정도 성실성은 보장되는 사람이다. - 성실함

 

2. 철학과 출신이자 인문 소프트웨어 출신이다. 나는 인공지능 윤리를 공부하다가 기술 그 자체에 매력을 느껴 소프트웨어를 다중전공한 융합형 인재이다. 나는 일을 할 때 기술뿐만 아니라 왜?라는 것에 집중할 수 있는 사람이다. - 융합형

 

3. 나는 장교(여단급 참모과장) 출신이며, 그렇기 때문에 리더십 및 팔로어십 모두를 갖추고 있는 사람이다. 또, 장교이기 때문에 신분이 보장된 사람이다.(학폭, 범죄자는 장교 불가능) - 리더십, 팔로우십

 

4. 나는 7개 웹 프로젝트를 리딩해봤고, 해당 프로젝트는 모두 MAU가 충분히 나오는 현재 사용 중인 프로젝트이다. 그 프로젝트들은 내가 불편해서 만들었고, 모든 프로젝트는 기획부터 개발, 운영까지 모두 진행했다. - 문제 해결 능력

 

5. 나는 42 서울의 멤버다. 즉, 나는 기술을 배울 줄 아는 사람이다. 나는 가져다 쓰기만 하는 사람이 아니다. 시스템콜부터 바닥부터 구현할 줄 알고 또 어떤 기술이든 주어지면 빠르게 익혀서 바로 쓸 줄 아는 사람이다.  - 자기 주도적, 기술적 완성도

 

외부인으로서 나를 마주하는 경험

나도 나를 관조하는 긴 시간이 아니었다면, 나를 꾸미는 방법을 알 수 없었을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여러 멘토님들의 도움 그리고 동료 카뎃, 멤버들의 도움 덕분에 '나'라는 사람을 살펴볼 수 있었다. 내가 생각한 나와 남이 생각하는 나는 다르다. 그 간극을 줄이고 나를 객관적으로 살펴보는 것이 취준생으로서는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 같다. 살펴보면 어떤 사람은 충분한 능력을 갖추고도 자신이 너무 부족하다고 느껴 면접에 주눅 드는 반면, 어떤 사람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자신감만 가득 찬 사람들도 있는 것 같다.

 

위의 두 자세는 취직할 때 좋은 자세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생각하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나를 제대로 마주하는 것이다. 내가 누군지 알아야 나를 남에게 소개할 수 있다. 스스로도 모르면서 스스로를 어떻게 남에게 소개하고 팔 수 있을 것인가? 스스로를 아는 과정은 너무나도 고통스럽지만 그 과정에서 나는 얻은 것이 많다고 생각한다. 

 

나를 스스로 평가하는 것 그리고 그 과정에 나에 대한 정보를 외부에 공개하는 것 모두 용기가 있어야만 진행할 수 있다. 솔직히 나도 내 자소서를 보여주고 다닐 때 그리고 나에 대해 이야기하고 스스로를 평가받을 때 너무 부끄러웠다. 누군들 부끄럽지 않으랴. 또 누군들 스스로를 그렇게 내보이고 싶을까. 나에 대해 남에게 평가받는 순간은 마치 나체로 누군가를 마주하는 것과 같다. 하지만, 그 과정은 필요하고 꼭 한 번은 해야 스스로를 알 수 있다. 나를 내보이고 또 평가받아라 그래야 나의 자아와 타인이 보는 나를 동기화할 수 있다.

세상에 의연해지자

취준을 하면서 스스로 가장 느꼈던 것들은 스스로의 의연함을 길러야 된다는 것이다. 운 7기 3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취직의 과정도 똑같다고 생각된다. 아무리 내가 좋은 사람이라도 그 회사에 맞지 않으면 거절될 수 있는 것이고 또 아무리 내가 부족한 사람이라도 나를 필요로 하는 회사라면 뽑힐 수 있다. 결과에 너무 민감 해하지 말자. 

 

나는 인생 처음으로 넣은 자소서를 아무도 읽어주지 않았다. 여러 취업 공고를 고르고 골라서 내가 가장 가고 싶은 회사 단 하나에 넣었는데 일주일이 지나도 열람되자 않는 그 기분. 마치 열심히 포장한 내 선물을 그 누구도 열어주지 않는 기분. 일주일이 지나고 자동적으로 내 이력서가 취소되었을 때, 그날 저녁 아쉬움과 원망을 삼키기 위해 부지런히 술을 마셨다. 내 이력서를 아무도 열어주지 않았다는 소외감. 그리고 그 회사에 대한 원망을 술에 담느라 그날 저녁은 술맛도 모르고 열심히 마셨다.

 

첫 이력서를 그렇게 보내고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읽히지 않은 이력서들은 존재했다. 하지만, 그 이후에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 원래 첫 아픔이 가장 아프고 그 뒤는 무뎌진다고 하지 않는가? 그냥 그러려니 했다. 최종적으로 내 25개의 이력서 지원중 8개는 끝까지 읽히지 않았다. 내게는 소중한 순간순간의 지원이었지만, 아마도 그 지원서들은 네트워크상의 쓰레기 데이터로 남겨졌으리라. 하지만, 이제는 그러려니 한다. 취준의 기간들이 나를 이렇게 의연하게 만들어준다.

 

서류에 탈락한다고, 서류가 읽히지 않는다고 너무 슬퍼하지 말자. 그 회사는 어차피 나랑 안 맞는 신 포도였을 뿐이리라

나를 증명하는 것은 내가 보여줄 수 있는 것이다.

서류에 합격하고, 면접에 나서면서 가장 많이 느낄 수 있었던 것은 '나를 표현하는 방법을 더 길러야 되겠다'라는 것이다. 면접관은 나를 모른다. 나도 면접관을 모른다. 면접은 마치 하나의 소개팅 장소처럼 서로 간을 보면서 상대에 대해 평가하는 순간들인 것이다. 물론 그 소개팅 자리의 운동장은 매우 기울어져있을지언정 말이다.

 

나를 표현하기 위해서는 내가 가지고 있는 무기가 강해야 된다. 다행히도 나는 주소창만 치면 바로 볼 수 있는 수많은 웹서비스라는 +7강 무기를 가지고 있었고, 나의 수많은 발표 경험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이 남아있는 유튜브 채널은 나의 갑옷처럼 받쳐주었다. 결국 나를 증명하기 위해서는 말 그 이상이 필요한 것이다. 나는 다행히도 경력이 없는 1 렙 뉴비였지만, 수많은 무기 제련에 성공하였고 덕분에 대부분의 면접은 즐거움만이 가득할 수 있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설명하기보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보여주는 것이 좋다고 생각된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하지 않는가. 한참 동안 내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고 당신 팀에 기여할 수 있는지 떠드는 것보다 내가 어떤 것을 했고, 이를 바탕으로 팀에서 어떤 것을 할 수 있는지 말하는 것이 훨씬 도움이 된 것 같다. 많은 서비스를 만들어보고 또 코드를 치자. 결국 내가 증명할 수 있는 것은 내가 보여줄 수 있는 것이기에

내가 다르다면 그것은 장점이 될 수도 있다.

나는 장교출신이고 본 전공은 문과다. 문과 출신인 사람은 여럿 봐왔지만, 장교출신은 크게 많지 않았다. 42 서울에서도 2명 정도만 알고 지내는 것 같다. 사실 개발직군을 선택한 사람 중에 장교출신은 거의 없기 때문에 장교 출신의 개발자를 보는 것이 힘든 것도 당연하다.(대부분의 컴공 전공자들은 장교가 아닌 전문연, 대체근무를 선택한다)

 

처음에 나는 이 장교라는 경력을 어떻게 사용해야 될지 몰라서 내 이력서 한복판에 작게 작성했었다. 장교출신 개발자들은 많지 않았고, 그렇기 때문에 이 경력이 크게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웬걸, 취직 필드에 나가보니 내 장교라는 이력은 생각보다 많은 관심을 받게 되었다.

 

아주아주 가끔이었지만, 장교 선배 개발자가 면접에 들어오는 경험도 가질 수 있었고, 또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가 장교를 하고 나서 개발자로 전직한 것에 대해서 상당한 관심을 기울였다. 덕분에 나는 면접관의 관심을 끌기에 시간을 많이 쓰지 않아도 되었고, 나 스스로를 뽐내는 것에 면접시간 대부분을 할애할 수 있었다.(면접관의 흥미를 끌기 위해 노력하는 면접자와 다르게 말이다) 

 

스스로가 너무 다르다고 생각하면, 다른 점에서 좋은 점을 잘 찾아보자. 나는 개발과 완전 관련 없어 보이는 장교라는 출신에서 내 장점을 뽑아내려 노력했다. 내 마지막 면접에서 CTO가 했던 질문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장교라는 경험이 우리 회사에서 어떻게 발현될 수 있을까요?"라는 질문을 받았고 나는 '참모과장으로 해왔던 경험은 리더의 의도를 파악하고 실행하는데 매우 능숙하다. 또, 사람들을 이끌고 리더가 하고 싶으나 할 수 없는 말을 할 수 있다'라는 방식으로 스스로 어필했고 덕분에 합격했다. 내가 너무 다르다고 주눅 들지 말자 다른 것은 스스로의 경쟁력이 될 수 있다.

기억에 남는 면접관들

면접을 여러 군데를 다니면서 기억에 남는 면접관 분들이 많다. 취직을 준비하면서 인사팀은 몰라도 면접관은 늘 좋았던 것 같다. 요즘 회사에서 사람을 많이 뽑아주지 않다 보니 사람 한 명을 뽑더라도 좀 잘 뽑아보려고 하는 모습을 많이 봤던 것 같다. 또, 단순히 면접을 의무감으로 하는 것보다 '나'라는 면접자의 인생에 공감하고 맥락을 이해하려고 해 주셨던 많은 면접관 분들에게 감사한다.

 

특히, 회사 포지션 제안은 고사했지만 아직도 계속 연락이 되는 많은 면접관분들에게 감사한다. 특히 자신의 회사가 마음에 안 든다면 다른 회사라도 오퍼 받아주겠다고 하셨던 분들도 계셨는데, 이럴 때 보면 참 인복이 많았다고 생각이 든다. 특히, 회사에서는 면접비를 안 챙겨준다면서 사비로라도 면접비를 챙겨주셨던 모 회사의 이사님께는 늘 감사드린다.

 

면접을 보기 위해 회사를 다니면서, 또 실제 사회의 요구에 맞닿으면서 여러 면접관분들에게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다. 면접관이기 이전에, 현업에 계신 선배이자 개발자로서 감사드린다.

 

한 면접이 끝나고 최종오퍼를 고사한 다음날 면접관 한분에게 연락을 받은 기억이 있다. 면접을 진행하면서, 면접관을 적대하지 않고 배우려는 모습이 좋아 보여서 뽑았는데 왜 안 오냐는 전화였는데, 사실 면접관분이 전화 올 줄은 몰라서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또 기억을 살펴보면, 그 면접은 면접이 아니라 하나의 수업으로 기억이 남는 것에서 또 당시에는 가고 싶었던 회사였던 점에서 더욱 답변하기 어려웠던 기억이 난다. 개인적인 사정을 말씀드리고 아쉬움과 함께 전화통화는 좋게 마무리되었지만, 그 강렬한 통화와 면접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나 또한 계속 일을 하다 보면, 언젠가 면접관으로 들어가게 될 텐데 나도 그때 그 면접과 불처럼 누군가의 기억에 남는 좋은 면접관으로 성장해야겠다는 하나의 목표를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언젠가 다시 한번 면접을 볼 때면 더욱 긴장하지 말고, 적대하지 말고 좋은 동료가 될 사람으로서 면접을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왜 돈을 버는 걸까?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서 돈을 버는가? 혹은 생존을 위해서?

 

나는 직장생활은 단순히 돈 버는 것 이상 이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외국계 대기업을 선택했다. 사실 내가 선택한 이 회사보다 돈 많이 준다는 곳, 또 복지가 더 좋은 곳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돈 혹은 복지보다 내 5년 후를 생각해서 지금 계약한 회사를 선택하게 되었다.

 

구직을 시작할 때는 '일단 회사! 나를 원하는 곳으로 들어가자!'라고 생각하지만 이곳저곳 붙기 시작하면 '그래서 내가 원하는 게 뭐지?'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나는 우리나라만이 아닌 외국에서도 일하고 싶었고, 또 한국사회가 아닌 다른 사회의 사람들과도 소통하고 싶었다. 그래서 이 회사를 선택했고, 결정하게 되었다. 취준을 시작할 때는 아니더라도 내가 왜 일을 하는지에 대해서는 다들 고민해 보면 좋을 것 같다. 스스로의 의도와 의지가 함께하면 더 즐겁게 일할 수 있지 않겠는가?

쓰고 싶은 이야기는 많지만

글이 너무 길어지는 것은 지양하고 싶기에 글을 이만 줄이려고 한다. 8주의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취준생활. 사회가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학생으로서 그리고 취준생으로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배울 수 있는 배움의 시간이었던 것 같다.

 

또, 취직기간은 나 스스로 거절에 스트레스받지 않고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게 스스로를 성장시킬 수 있는 하나의 기회였다. 내 주변의 많은 능력 좋은 동료들도 모두 좋은 소식만 함께하기를 간절히 바라며 취준 기간 동안 스스로를 응원하기 위해서 수없이 들었던 노래 한 곡과 함께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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